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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꽁초의 노래 > (원작 '칼의 노래', 김훈)>
#학교_패러디문학관

버려진 꽁초마다 꽃이 피었다. 담배 피우는 1단지에 점심 식후에 비치어,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담배 연기는 학교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둡기만 한 1단지 주차장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.


담으로 건너간 학생들이 머무는 주차장으로 순찰 갈 때, 전자 담배에 뿜은 연기는 수증기처럼 몰려가서 소멸했다. 점심이면 먼 단지까지 학생들이 피우러 가고, 점심에 떠오르는 연기가 먼 주차장부터 다시 1단지까지 흘러나가는 것이어서 학교에서는 늘 민원이 먼저 오고 선도는 더디기만 했다.


건물 뒤 해가 마지막 노을에 반짝이던 시시티브이 위치 알게 되면 학생은 캄캄하게 어둡고 숨겨진 그곳에 달려들어 책상 창고에 부딪히는 라이터 소리가 어둠 속에서 뒤채었다. 시선은 책상 창고 앞 탁구대에서 꺾여지고, 냄새로도 가늠할 수 없는 사각지대 너무 캄캄한 그곳에서부터 구름 더미 같은 킥킥 소리와 담배 연기로 무장한 학생들의 함성소리는 또다시 날개를 펼치고 내게 일을 준다.


나는 학생의 일탈 근거를 알 수 없었고, 학생 또한 내 열의의 떨림과 짜증을 알 수 없을 것이다. 서로 알지 못하는 적의가 학교 가득히 팽팽했으나 지금 나에게는 적의만이 있고 교권이 없다.


나는 발령 후 5년 초하룻날 경기도 그 지역에서 풀려났다. 내가 받은 고초의 내용은 무의미했다. 학교 밖의 시선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. 그들은 허상을 좇고 있었다. 나는 그들의 허세가 가엾었다. 그들은 허상을 정밀하게 짜 맞추어 인권과 참교육이라는 그들만의 구조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.


그들은 현장의 현실에 입각해 있지 않았다. 현장에 묶여서 나는 허상들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. 내 심장을 으깨는 허상들의 탁상행정은 뼈가 그슬어지도록 아프고 화가 났다.


나는 허상의 무내용함과 눈앞에 절벽에 몰아세우는 인권의 고통 사이에서 여러 번 실성했다. 나는 학교를 옮긴 후 학교 밖 연수원 등을 돌아다녔다. 이름난 교사들은 나를 걱정하는 피드를 날려왔다. 내가 70년대 폭력교사인 듯 취급했으므로 그들에게 직접 내 상황을 나타내지 않았다.


그 교사들은 다만 자신들의 자랑만 들려주고 돌아갔다. 이 세상에 일반화란 본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. 나는 분필로 콧구멍을 쑤시는 비염을 판치기에 교과서를 지져가며 낙을 느끼는 학생처럼 버티었다. 내 자격지심의 시작이었다.


00초 00중 00고에서 불어오는 참 교사 바람에는 어쩌다 걸린 꽃동네 환경밖에 취한 그네들의 착각이 스며있었다. 눅눅한 담배의 향기를 품은 1단지 끝자락에서 교권 침해 하루 이틀이냐 푸념이 피어올랐고, 학생 인권에 밀려가는 바람에 고개를 포개면서 숨는 내 책임의식에 푸념했다. 초임 때 다짐은 끝이 다했거나 자격지심에 시체처럼 뒤덮여간다.


기만과 간 보기가 우박으로 내리는 현장의 뒷전에서 저곳 탁상 행정가들은 오늘도 뭔가를 지령하고 운 좋은 교사들은 자기 자랑에 빠진다. 잘려나간 초심과 중심은 현실 적응에 절여져 학부모에게 바쳐졌다. 그것이 적응의 결과물이었다.


나는 보지 못했으므로 모른다. 길 건너 어느 학교에서는 이상 위에 떠다니는 아름다운 아이들의 꿈의 날개를 부채질에 들어 올려서 교사 사명을 노래할 수도 있겠다.


뒤를 돌아보면 뉴스에 나오는 학교에만 머무는 교사들도 있다. 무기력 속에 그 틀에 다시 던져졌다. 그 운 좋음과 또 그만큼의 추진으로 그들은 행복했고, 그렇게 하루를 또 산다.


푸념이야 어찌하든 간에 하루 또 살아야 하는 자는 살아서 그 자신의 교직을 끝내려고 하지는 않는다.


이 끝없는 불균형은 결국은 무의미한 푸념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성의한 곳인가, 내 판서 깊은 곳에서,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질투심의 심연에서, 그저 징징징, 그저 징징징 그렇게 징징징 거리기만 하듯,


깔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이는 듯했다.
나는 자판으로 묵은 짜증을 흘렸다.

캄캄한 신념은 푸념으로 뒤덮였다.